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구 도시철도 3호선 (문단 편집) === 계획 === 현재의 대구 3호선 계획은 1991년 대구시가 지하철을 계획할 때 현재의 1호선, 2호선과 함께 있었고, 노선 경로도 현재와 거의 비슷하다.[* 이때는 '''6호선'''까지 계획되어 있었다. 그러나 IMF로 인해 6호선은 커녕 4호선도 30년째 착공하지 못한 상태.] 초기에는 1호선 건설지에 의하면 현재의 3호선을 2호선, 현재의 2호선을 3호선으로 건설하려고 했으며 경전철이 아닌 [[지하철]](중전철)로 계획됐기에 역 수도 지금보다 적은 25개로 계획되어 있었다. 이후 2호선과 3호선의 건설 순서가 뒤바뀌고, 대구시의 재정난과[* [[1997년 외환 위기]]와 별개로 대구시의 재정 상황은 1호선 건설 당시 국비 지원이 25%에 그쳤고, 2호선 건설 당시 국비 지원도 49% 수준이라[[https://mnews.imaeil.com/page/view/1999051314302210341|#]] 지하철 건설로 인한 재정난이 심각했다. 이 때문에 1990년대 대구 지역 단골 선거 공약이 지하철 건설 국비 지원 확대였고, 같은 시기 [[부산광역시|부산]]이 [[국토교통부|건설교통부]] 산하 [[부산교통공사|부산교통공단]]에서 지하철을 건설하며 대구보다 월등히 많은 국비 지원을 받자 당시 [[문민정부]]가 PK를 편애하고 TK를 홀대한다는 지역 여론과 맞물려 대구 지역사회의 불만이 상당했다. 이 같은 문제는 [[대구교통공사 1000호대 전동차]] 매입 단가를 지나치게 낮게 만들어 전동차를 부실하게 만들게 되는 등 [[대구 지하철 참사]]의 피해가 커지는 원인으로도 작용했다.] [[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]]로 인하여 1호선 완공이 당초 계획했던 1996년 말에서 1997년으로 1년 늦춰지고, 1호선 완공에 맞춰 착공하려던 2호선 역시 당초 계획했던 1995년 말 착공, 1999년 완공에서[[https://mnews.imaeil.com/page/view/1995092700140668725|#]] 1996년 말 착공, 빠르면 2001년 6월, 늦어도 2002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연기됐으며[[https://mnews.imaeil.com/page/view/1996091115001221452|#]][* 그러나 2호선 역시 대구시의 재정난과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해 당초 계획했던 2002년에서 3년이나 미뤄진 2005년이 되어서야 개통했다.] [[1997년 외환 위기]]가 터지는 바람에 당초 1999년 2호선 완공에 맞춰 계획한 1998년 착공, 2004년 개통에서[[https://mnews.imaeil.com/page/view/1996111200505175844|#]] 한참 뒤로 미뤄졌고, 신규 도시철도 노선을 경전철로 건설한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[[https://mnews.imaeil.com/page/view/2002040415223401810|#]] 결국 경전철로 수정하여 2004년에 [[예비타당성조사]]를 통과했다. 당시 예비타당성조사에서는 [[K-AGT]] 방식의 [[고무차륜열차|고무차륜]] [[경전철]]을 채택했으며, [[달성공원역|달성네거리]] 혹은 [[원대역|원대오거리]] 인근에서 [[명덕역]]까지를 지하로, 나머지를 지상 고가로 건설할 계획이었다. 이에 근거해 기본계획이 짜여졌고 2006년에 [[국토교통부|건설교통부]]의 승인을 얻었다. 그런데 그마저도 건설 비용이 1조 원이 넘어 머뭇대다가, 2008년에 3호선의 지하화를 포기하고 공사비용이 비교적 적게 드는 모노레일 형태의 경전철로 결정되었다.[* [[http://srchdb1.chosun.com/pdf/i_service/pdf_ReadBody.jsp?ID=2007051000222|지하철3호선 지상 모노레일로 건설(조선일보)]]] 3호선의 건설 계획이 확정되기까지 1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. 또한 당초 계획은 2001년에 착공해서 2007년에 개통할 계획이었지만 8년이나 지연돼서 2009년 착공, 2015년 개통되었다. 이로 인해 대구 도시철도 3호선은 [[지하철]]이 아닌 지상철이 되었다. 대구지하철공사가 명칭을 [[대구도시철도공사]]로 변경한 것이 [[대구 지하철 참사]]의 오명을 벗기 위해선 사명과 CI 등의 변경이 불가피했던 측면도 있지만, 이 3호선 계획 또한 작용했다. 계획 중인 대구 4호선도 마찬가지로 전 역이 지상역으로 계획되어 있다. 고무차륜 경전철로 계획되었을 때는 전 구간이 동시에 개통되지 않고 먼저 칠곡지구~건들바위네거리 구간(1공구~6공구 일부)이 1단계로 개통되고, 나머지 구간(6공구 일부~8공구)이 연장되어 2단계로 개통될 예정이었지만, 모노레일로 변경되면서 공사 기간을 최대한 줄여 시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전 구간을 동시에 개통하도록 결정됐다. 공사가 2단계로 나눠 진행된다면 전 구간은 [[https://www.segye.com/newsView/20060428000862|2019년에 개통되기 때문이었다.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